은혜/간증나눔
로마서 초급반 - 서정수
로마서반
작성자
서정수
작성일
2022-12-23 14:30
조회
77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태어나서부터 교회 안에서 자라 성경과 교회생활은 내게 너무나 친숙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렸을 때부터 부러운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인생에 임팩트 있는 간증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병에 걸려서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었다든지, 큰 어려움에 처했는데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하심으로 해결해주셨다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저만의 스토리가 있었으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도 저에게는 그것이 버킷리스트의 한 줄과 같이 마음속에 늘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있으면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유명한 전도사들은 다들 그런 것이 있었으니까요. 성인이 되고 그런 소망함은 사라졌지만 복음을 어떻게 잘 전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사영리와 같은 수많은 전도 방법들을 훈련 받고 실행해봤지만 그것들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었고, 고민 끝에 로마서 초급반을 듣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알고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갔던 첫 강의는 제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다소 실망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강의를 계속 들었습니다. 로마서 1장 1절 말씀으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을 하시며, 우리가 죄인이었고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설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던 부분이었고 익숙한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목사님께서 저에게 숙제를 내주신 것은 그것에 대해 진정으로 받아들이느냐는 질문이었고 그것에 대한 고민을 소그룹과정 가운데에서 계속해서 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죄를 깨달으면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설명하시면서 그것을 느껴야 진짜 깨달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내용은 머리로 다 이해했고, 내가 죄인인 것도 알겠는데 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구원 받았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사하여 주셨는데 왜 그 죄로 인해서 그런 마음이 들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의 중에 이에 대해 질문했고 역시나 못 알아듣는다고 엄청 혼났습니다. 그때부터 제 안에 욱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못 알아들어서 물어보는데 왜 답은 안해주고 못 알아듣는다고 혼만 내실까, 내가 몰라서 물어보지 알면 이런 질문을 하겠느냐, 답이라도 알려주고 혼을 내면 억울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들이 막 올라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고민도 내가 해야 되고 답도 내가 얻어야 이것을 진정 깨달은 것이라고 이제는 깨달았고 그래야 내 것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알 듯 말 듯한 상황 속에서 계속 이어졌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죄로 한 것이 아닌 다름 부분에서의 우울감으로 인해 그러한 생각들이 들었기에 여전히 머리는 아프고 속은 시끄러운 혼란 속에서 시간은 계속 흘러갔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한 20대 후반부터 우울감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심한 탈모와 쉽지 않은 구직으로 인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근데 그것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는데도 때때로 우울감을 경험했었습니다. 왜 이런 감정이 오는지 몰랐습니다. 이번 로마서 반을 들으며 고민 중에 그것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제 안의 최고의 가치는 ‘쓸모있는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음을 말이죠. 로마서 반을 듣는 중에 일어난 힘든 상황들 가운데 저는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되지도, 부모님께 좋은 아들이 되지도 못했고, 직장에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유능한 직원이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효도하고 싶었고, 직장에서도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상황 속에서 나 스스로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며 극심한 우울함과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처음엔 죄에 대한 고민을 통해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되는데 왜 나는 그것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까, 죽고 싶은 마음이 들면 된다고 했으니 나는 이제 깨달은 걸까라는 혼란 속에 또 고민은 이어졌고, 질문했고 혼났습니다. 정말 많이 힘들었고,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하고 싶지 않았었습니다. 그냥 이 힘든 상황을 피하고 싶었고,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적당히 넘기고 그냥 편하게 믿고 싶었습니다. 감정 속에 매몰되어 기도도 잘 되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맘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십벗 강의와 주일 설교, 금요 설교를 통해 제게 깨닫고 하시며, 하루를 또 며칠을 살 힘을 계속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금요기도회 예배를 드리던 중 찬양 중에 깨닫고 고백하고 선포하게 하셨는데,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닌데도 나는 내 힘으로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하다가 안되니 좌절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고 허무해졌다가 다시 어느 정도 힘이 생기면 또 나의 힘으로 이것을 어떻게 해쳐나갈지 고민하고 살아가다가 다시 좌절하고 우울해지고를 반복하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결국에는 행위로 인정받으려 했고 존재와 행위를 구분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죄를 깨닫는 것과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모습 속에 괴로워했던 것들이 결국에는 같은 뿌리 속에 있던 문제였습니다. 깨닫고 보니 나는 신앙이 없었구나 하는 고백이 절로 나왔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냥 누가 와서 문제를 해결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설교를 들었지만 그것이 나의 삶 속에 실재로 적용되고 역사함을 깨닫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 3때 수련회 속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내 신앙 없음을 고백하면서도 그때의 인격적 만남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감격의 순간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내 속에 가득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속이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았구나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죽을 것 같았던 2달여간의 시간이 지나 소그룹 막바지에 숙제로 로마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배웠던 것들을 전하고 알려주는데 듣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그 대답을 들으며, 특히 부모님께 전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많은 것들이 있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참 고민하면서 살지 않는구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전하는 것에 10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질문들을 하며 물었을 때 며칠, 때로는 일주일 혹은 그 듣는 시간 몇 십분 동안만 고민하고 그것으로 우리는 끝을 냅니다. 쉽사리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고 또 그것이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실재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예수님을 그 자리에 초청하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대속하셨음을 알라고 목사님께서 답을 주셨음에도 저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그것이 실재 나의 삶 속에서 어떤 것을 뜻하는지 몰랐고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깨닫고 보니 내 삶 속에서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초청하고 동행하며 살아야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 고민을 통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고민만 하고 기도하지 않은 저와 같은 분들이 혹시 계십니까? 기도만 하고 고민하지 않는 분들 혹시 계신가요? 고민하며 기도하고 하나님께 물으며 다시 고민하고 반복할 때 우리는 조금씩 자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고민과 기도를 함께 하며 같이 하며 자라납시다!!
저는 이번 깨달음을 통해 복음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사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힘들고 말뿐이 아닌 진짜 죽을만큼 힘든 과정을 통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힘들었지만 한 번만 하면 됩니다. 간증을 듣고 로마서반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한 번만 하면 됩니다. 저도 목사님께서 한 번 더 들으라고 하셨을 때 ‘이걸 또 하라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지만 순종함으로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다시 들어보려 합니다. 로마서반 아직 못 들어보신 분들, 들었는데 아직 깨닫지 못하신 분들 함께 용기내서 깨닫고 복음을 누리는 삶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갔던 첫 강의는 제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다소 실망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강의를 계속 들었습니다. 로마서 1장 1절 말씀으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을 하시며, 우리가 죄인이었고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설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던 부분이었고 익숙한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목사님께서 저에게 숙제를 내주신 것은 그것에 대해 진정으로 받아들이느냐는 질문이었고 그것에 대한 고민을 소그룹과정 가운데에서 계속해서 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죄를 깨달으면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설명하시면서 그것을 느껴야 진짜 깨달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내용은 머리로 다 이해했고, 내가 죄인인 것도 알겠는데 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구원 받았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사하여 주셨는데 왜 그 죄로 인해서 그런 마음이 들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의 중에 이에 대해 질문했고 역시나 못 알아듣는다고 엄청 혼났습니다. 그때부터 제 안에 욱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못 알아들어서 물어보는데 왜 답은 안해주고 못 알아듣는다고 혼만 내실까, 내가 몰라서 물어보지 알면 이런 질문을 하겠느냐, 답이라도 알려주고 혼을 내면 억울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들이 막 올라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고민도 내가 해야 되고 답도 내가 얻어야 이것을 진정 깨달은 것이라고 이제는 깨달았고 그래야 내 것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알 듯 말 듯한 상황 속에서 계속 이어졌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죄로 한 것이 아닌 다름 부분에서의 우울감으로 인해 그러한 생각들이 들었기에 여전히 머리는 아프고 속은 시끄러운 혼란 속에서 시간은 계속 흘러갔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한 20대 후반부터 우울감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심한 탈모와 쉽지 않은 구직으로 인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근데 그것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는데도 때때로 우울감을 경험했었습니다. 왜 이런 감정이 오는지 몰랐습니다. 이번 로마서 반을 들으며 고민 중에 그것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제 안의 최고의 가치는 ‘쓸모있는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음을 말이죠. 로마서 반을 듣는 중에 일어난 힘든 상황들 가운데 저는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되지도, 부모님께 좋은 아들이 되지도 못했고, 직장에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유능한 직원이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효도하고 싶었고, 직장에서도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상황 속에서 나 스스로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며 극심한 우울함과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처음엔 죄에 대한 고민을 통해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되는데 왜 나는 그것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까, 죽고 싶은 마음이 들면 된다고 했으니 나는 이제 깨달은 걸까라는 혼란 속에 또 고민은 이어졌고, 질문했고 혼났습니다. 정말 많이 힘들었고,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하고 싶지 않았었습니다. 그냥 이 힘든 상황을 피하고 싶었고,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적당히 넘기고 그냥 편하게 믿고 싶었습니다. 감정 속에 매몰되어 기도도 잘 되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맘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십벗 강의와 주일 설교, 금요 설교를 통해 제게 깨닫고 하시며, 하루를 또 며칠을 살 힘을 계속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금요기도회 예배를 드리던 중 찬양 중에 깨닫고 고백하고 선포하게 하셨는데,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닌데도 나는 내 힘으로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하다가 안되니 좌절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고 허무해졌다가 다시 어느 정도 힘이 생기면 또 나의 힘으로 이것을 어떻게 해쳐나갈지 고민하고 살아가다가 다시 좌절하고 우울해지고를 반복하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결국에는 행위로 인정받으려 했고 존재와 행위를 구분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죄를 깨닫는 것과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모습 속에 괴로워했던 것들이 결국에는 같은 뿌리 속에 있던 문제였습니다. 깨닫고 보니 나는 신앙이 없었구나 하는 고백이 절로 나왔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냥 누가 와서 문제를 해결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설교를 들었지만 그것이 나의 삶 속에 실재로 적용되고 역사함을 깨닫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 3때 수련회 속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내 신앙 없음을 고백하면서도 그때의 인격적 만남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감격의 순간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내 속에 가득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속이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았구나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죽을 것 같았던 2달여간의 시간이 지나 소그룹 막바지에 숙제로 로마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배웠던 것들을 전하고 알려주는데 듣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그 대답을 들으며, 특히 부모님께 전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많은 것들이 있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참 고민하면서 살지 않는구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전하는 것에 10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질문들을 하며 물었을 때 며칠, 때로는 일주일 혹은 그 듣는 시간 몇 십분 동안만 고민하고 그것으로 우리는 끝을 냅니다. 쉽사리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고 또 그것이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실재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예수님을 그 자리에 초청하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대속하셨음을 알라고 목사님께서 답을 주셨음에도 저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그것이 실재 나의 삶 속에서 어떤 것을 뜻하는지 몰랐고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깨닫고 보니 내 삶 속에서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초청하고 동행하며 살아야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 고민을 통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고민만 하고 기도하지 않은 저와 같은 분들이 혹시 계십니까? 기도만 하고 고민하지 않는 분들 혹시 계신가요? 고민하며 기도하고 하나님께 물으며 다시 고민하고 반복할 때 우리는 조금씩 자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고민과 기도를 함께 하며 같이 하며 자라납시다!!
저는 이번 깨달음을 통해 복음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사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힘들고 말뿐이 아닌 진짜 죽을만큼 힘든 과정을 통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힘들었지만 한 번만 하면 됩니다. 간증을 듣고 로마서반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한 번만 하면 됩니다. 저도 목사님께서 한 번 더 들으라고 하셨을 때 ‘이걸 또 하라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지만 순종함으로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다시 들어보려 합니다. 로마서반 아직 못 들어보신 분들, 들었는데 아직 깨닫지 못하신 분들 함께 용기내서 깨닫고 복음을 누리는 삶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