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준 시작하기 전
2022년 한 해는 다준 9기와 23기 코칭반 그리고 TF까지 많은 것들을 배우고 많은 것들을 알아갔지만 여전히 방황하며 살던 나에게 다준 10기가 개설 된다고 하여 신청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지식을 더 채워서 은혜를 받아야지 라는 생각으로 신청하였으나 기도를 하는 순간,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은혜를 계속 부어 주고 계셨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하였었다. ‘경훈아 은혜를 계속 부어 주는데 왜 누리지를 못하니 그저 누리면 된다.’라고 말씀 해 주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안에는 ‘주님? 이미 다준 10기 회비를 납부 하였는데 어떻게 하죠? 다준을 하면 저번처럼 누릴 시간이 없는데 말이에요’ 그것 또한 내 생각이었다. 다준을 하며 누릴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다준이 시작 되었다.
- 다준 하는 중
첫날부터 강력하게 한방을 맞았다.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함이라는 것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는가, 말씀과 기도, 곡조 있는 기도(찬송)를 통해 관계를 하는 것이라는 말에 ‘아 나 뭐하고 있었지?’ 라는 생각과 함께 한 주 동안 강의에서 주님과의 교제 하는 법이 계속 들렸다. 우리가 존재는 이해했는데 교제가 안되니, 머리로는 가나안을 봐야하는걸 알지만 삶에서는 자꾸 에굽에 성을 쌓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첫 주부터 ‘잘못된 관계를 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교제를 하려고 하니 주님을 의식 하는 것이 불편해져 버렸다. 주님께서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고 듣고 계신다는 것이 나에게 너무나도 불편하였다.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 너무나도 불편하였다, 차라리 기계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미 내 삶을 다 아시는 걸 알지만 내 삶이라는 마음이 계속 올라 왔다. 그때 회개가 시작 되었다. 나는 아직도 변하지 않은 죄인이구나, ‘왜 계속 외롭다는 마음이 들지?, 은혜를 계속 부어 주시는데 왜 누리지 못하지?’ 말씀을 알지 못함에 답답함이 들었고, 내 고집을 내려놓지 못함에 힘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자기중심성으로 나를 다루기 시작하셨다, 내가 얼마나 내 감정으로 내 생각으로 살아 왔는지를 깨닫게 해 주셨다, 거기서부터 나는 일에서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감정을 내려놓고 주님을 찾기 시작 하였다. 그러고 나니 묵상을 하면 그것이 하루에 삶속에서 적용되어지고 변화되어지며 살아가지니 너무나도 재밌었다. 묵상이 이렇게나 재밌는 것 이였다니, 나는 묵상을 행위로만 하였구나가 느껴졌다, 그러고 나니 기도가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세요.’에서 ‘주님 이 상황 가운데 제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 무엇을 보게 하려 하시는 것인가요?, 혹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이 사람을 제게 붙여 주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 생각을 변화시켜 주세요, 성령님 도와주세요.’라는 기도가 나오기 시작 하였다. 그러고 나니 힘들고 지치는 상황은 많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 절망과 슬픔보다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상황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배와 찬양, 묵상과 기도에서 주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까?’ 궁금해지고 기대가 되었다. 다준을 하며 자아상을 듣게 되었고 거기서 ‘주님이 내가 외롭고 슬플 때, 태어나기 전부터 태어나고 나서, 지금까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나의 옆에 항상 함께하여 주셨구나.’를 보며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고 아끼시는지를 알게 되니 더욱 감사함이 몰려왔다. 내가 어렸을 때 힘들고 슬프고 외롭고 두려웠던 상황이 다 그럴만 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거짓된 감정들이 걷어지면서, 나를 바라 볼 수 있게 되었고, 나 스스로를 외면하던 감정들과 행동들을 다시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 다준을 마무리 하면서
이제는 지식적으로 채운 것들과 깨달은 것들을 삶에서 살아 보아야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고, 여전히 안 되는 것들이 많지만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사랑 받는 아들이며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나아가 보려한다. 아직 까지도 존재로써의 삶 보단 기능으로써의 삶을 먼저 하려고 하지만 주님께서 계속 보여주시는 것들과 나에게 주시는 말씀, 요한복음 7:17절과 야고보서 2장 17절로 삶을 살아내 보려한다. 나를 사랑하신만큼 사랑을 전하고, 나를 기다려 주신만큼 기다리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