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간증나눔

다준학교 9기 윤은비

다준학교
작성자
윤은비
작성일
2022-05-24 07:21
조회
163
다준학교가 이제는 점점 외부인에게 기회가 열린다고 한다. 교회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목사님의 머리가 점점 희끗희끗 해져 가는 걸 보니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목사님이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더 가까이 듣고 싶었다. 욕을 해가며, 소리를 지르며 외치는 그 한 마디가, 도대체 영혼을 향해서 하나님을 똑바로 알라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공동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청년부에 소속되는 것도, 함께하는 교회에 소속되는 것도 큰 장벽처럼 느껴졌다. 나름으로 열심히 인사하고 다녔지만 관계하고 더 깊어질 방법은 더 없어 보였다. 그러던 중 다준학교는 50일 동안 공동체를 알고 ‘나의 틀’을 깨부술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시작하였다.

직장동료 교회에서 내 교회로
직장동료 소개로 온 교회여서 교회 생활이 편했다. 굳이 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직장에서 하는 만큼만 거리를 유지하면 되니까. “그래, 이렇게 신앙 생활해야 나도 상대방도 편하지.”라며 직장동료와의 관계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꺼려졌었다. 다준학교에서 다 드러날 거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9기가 시작되었다.
내 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4주 차부터였다. 생각보다 오래 버텼다. 그러나 가면 쓰기도 벅찰 정도로 고비가 와버렸다. 4주 차엔 도저히 체력도 감정도 한계에 다다라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었다. 그 시작은 알리미 당번이었다. 꽤 잘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다. 5시 알람을 해줘야 하는데 눈 뜨니 20분이 지나있다. 눈도 못 뜨고 달려가서 “죄송해요! 늦었어요! 일어나세요. 일어나야 한단 말이에요!! 빨리요!”라고 외쳤다. 처음 외치는 순간엔 “그래, 이 정도 실수면 됐어.”라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매시간, 알람마다 이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드디어 금요일이 되었을 때는 늦어도 당당했다. “늦었어요! 일어나세요~ 오늘 금요일입니다~!!”

나는 내 실수에 대해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실수라면 더더욱 자책하였다. 항상 완벽주의를 추구하고 실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늘 생각해오던 내가 남의 출근길에 피해를 준 것이다. 저녁 강의 전 인사말은 늘 “혹시 지각하지는 않으셨나요? 죄송해요. 오늘도 알라미는 문제가 많습니다.”라며 실수에 대한 부분을 늘 인사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책했던 마음이 전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인사를 하는 나에게 보는 앞에 욕을 할 순 없었겠지만, 아침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냥 웃겼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어? 이거 뭐지? 자기 출근길이 늦어지는 데 그냥 웃어넘긴다고?”

그 실수를 시작으로 완벽주의를 추구하던 똑쟁이 같던 내가 조금은 멍청한 행동을 해도 수용되는 공동체를 만났다. 조금 모자란 모습이 있을 수도 있는데, 가면을 조금만 벗어놓아도 될 텐데, 나 스스로 아등바등 가면을 더 두껍게 만든 것 같았다. 그렇게 자의든 타의든 벗겨져 버린 가면이 생각보다 힘들 줄 알았는데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 버렸다. 앞으로도 나를 드러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커져갔다.

죄인이 천국을 누리다.
(로마서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성경 구절을 황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윤은비는 함께하는 교회 셀원으로 부르심을 받아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 용서받고 누리고 재창조의 삶을 살기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라고 바꿔 적게 하시고 계속 반복해서 읽었다. 읽어도 깨닫지를 못하니 뭐가 들어가겠냐며 목 터지라 외쳤던 말이다. 물론 외우진 못했다. 이 로마서 들어가는 첫 구절이 죄를 깨닫고 죄에서 해방됨을 경험하게 해준 말씀이다. 기독교에서 늘 듣는 말은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과연 교회를 다녔던 10년 동안 ‘죄’에 대해서 바르게 인식하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죄인임을 나는 바르게 알고 있었는가. 그렇지 않았다. 죄에 대해서 바르게 모르니 천국을 누리는 건 상상을 할 수도 없었다. 다준 학교에서 ‘죄’에 대한 부분을 계속 말하는 데 계속 불편했다. “그래, 나 죄인인 거 아는데 죄를 얘기하는데 왜 이렇게 불편한 거야?” 딱 이런 마음이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죄인인 걸 인식하지 못했고, 내가 예를 들어 거짓말이라는 죄를 저질렀을 때 “어, 어떡하지. 죄를 저질러 버렸네. 라고 생각하고 눌려있었다. 평소에 나 스스로 의인으로 여겼던 교만하고 오만한 모습을 깨달았다. 평소엔 의인이어서 죄를 딱 하나 저질러 버렸네, 그래서 눌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만히, 숨만 쉬어도 죄인인 것을 다준을 통해서 깨달았다. 죄인임을 깨달아 버리니까 뻔뻔하게 ”그래~ 이제 어쩔 거야 예수님 필요할 수밖에 없네~“ 죄인인 걸 깨닫고 나니 눌릴 게 없었다. 왜냐면 죄인이어서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한테 나아가질 않으면 살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내 머리를 굴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감사했고, 그래서 행복했다. 나 그럼 이제 예수님이랑 같이 있을 수 있네. 그런 죄인을 위해서 오셨네. 그런 죄인에게 천국을 허락하시고, 오늘 하루를 허락하셨네. 라고 생각이 되니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70년짜리 인생을 선물하셔서 복음을 알고 듣게 하시고, 죄인이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회복 장치와 천국을 누릴 수 있도록 계획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8주간의 다준 학교 기간 동안 계속해서 들리는 말씀은 마태복음 6장 33절이었다. 나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너무 어렵게 다가왔다. 도대체 그의 나라가 무엇이길래 어떻게 구하라는 건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어렴풋이 알겠는건 하나님을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것만을 구하는 신으로 치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천지를 창조하시고 태초부터 나에 대한 구원계획을 세우셨다. 믿지 않는 우리 가정에 밀알의 소망을 품게 하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인 것. 그것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언약 아래에 하나님과 나의 약속이며, 그것을 누리고 살라는 사랑의 표현이다. 너무 거창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인정하는 것이다. 주어진 하루에 말씀 묵상하며 교제하고 하나님의 딸로서 하루를 누리는 삶을 허락하셨다.

천국을 허락하신 삶을 누리지 못했고, 죄를 잘못 알아 ‘죄에서 자유 됨’을 누리지 못했고, 공동체 속 문제만 바라봤던 내 눈을 바꾸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50일 동안 고군분투 내 돌 같은 머리를 깨부수느라 고생하신 황동한 목사님과 식사와 간식, 탕약 등으로 섬겨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공동체 힘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같은 공동체에 있음에 감사했다. 죄인임에도 하나님께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허락하셔서 서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도록 하시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천국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