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간증나눔
출애굽기 소그룹 소감문(2022.12)_권유미
기타
작성자
권유미
작성일
2023-01-06 00:14
조회
62
목사님의 주일 광야 설교 시리즈가 시작되었을 때,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말씀같이 여겨졌다. 현재의 신앙 생활, 광야에 있으면서 자꾸만 지나온 과거 애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내가 느껴지던 차에 무엇을, 어떻게 버리고, 어떤 것을 새롭게 바라 보아야 할지 알고 싶어 기대감으로 출애굽기 소그룹을 신청하였다. 출애굽기 소그룹을 들으며 현재의 신앙을 점검하고 다시 깨닫게 된 것을 정리해본다.
1. 내 인생의 출애굽사건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확실히 하였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근심을 알고(출1-2장), 하나님이 내려오셔서(3-11장), 애굽인의 손에 견져내고(12장),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13-24장),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는 땅으로 데려가는(25-14장) 출애굽의 이야기가 내 인생의 사건으로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졌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건져내어 인도하시고 데리고 가고 계시는 것이구나. 분명 건짐 받은 자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 받은 자로 기쁨이 있었지만, 가끔은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걸까, 내가 잘 가고 있는 걸까 희뿌연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권유미는 함께하는 교회 성도로 부르심을 받아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 용서 받고, 누리고, 재 창조의 사역을 살기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목사님께서 로마서 1:1로 정체성을 재확인 시켜주실 때, 출애굽한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깨달아졌다. 하나님은 나를 함께하는 교회 성도로 부르셨고 하나님을 더 알고 누리며 결국 재 창조의 사역, 나의 회복으로부터 사람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심을 확신하였다.
2. 나는 지도자로 세워졌으나 내가 지도자임을 알지 못하고 노예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세는 애굽의 종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냈지만, 광야는 결핍의 땅이었고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물 달라, 돌아가겠다, 돌로 치겠다 하였다. 지도자 모세와 달리 백성들에겐 아직 애굽의 노예근성이 남은 탓이다. 목사님께서 노예 근성은 자원성이 없고, 남 탓을 하고, 불평과 원망, 미래를 보지 않고 성과만 보는 것이라 하셨다. 내 마음대로 살던 인생이 한 남자를 만나 두 아이를 기르고 부모님을 모시는 인생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다스리는 자, 지도자의 자리로 세우셨는데, 나는 아직도 내 자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고 이것 저것 불편한 것들을 보며 남편 탓, 아이들 탓, 부모 탓, 내 성과가 없음을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내가 지도자로 함께 서서 돕고 이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내 모습이 남편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예수님처럼 왕자의 신분으로 종처럼 섬겨야 함을 모르고, 종의 신분으로 왕 노릇 하려 했음을 완전히 돌이켰다.
3. 유월절 사건을 묵상하며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가족 구원, 나아가 공동체(교회)의 구원을 보았다. 어린 양의 피(예수님)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새 사람이 된 날을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 하였다. 무교병과 쓴 나물, 양고기를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허리띠와 신, 지팡이를 잡고 먹으라 하심은 구원의 긴박성과 말씀 먹으며 언제나 안주하지 말아야함을 나타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나의 거듭남이 나의 가족과 교회, 민족의 구원까지 이어졌다. 세워지고 헐어지는 것 같이 보이는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로 가능함을 배웠다. 내 가정 공동체, 교회 공동체가 신앙을 지켜 나가는데 핵심이구나 느꼈다.
4. 성막을 공부하며 예배의 순서를 새겼다. 성막의 문은 10m로 아주 넓고 문은 실로 짜여져 가닥가닥 늘어진 형태였다. 구원의 문은 넓지만, 혼자 들어가야했다. 번제단에 나의 죄를 대신한 제물을 태우면 온갖 냄새와 그을음이 날렸다. 엉망 진창인 우리 삶의 자리의 모습이었다. 물두멍에서 자기 성찰을 갖고, 성소에 들어간다. 성소에는 금촛대와 떡상, 분향단이 있었다. 금촛대는 성령을 상징하며 금 한 달란트로 두드려 만들어야 하는데, 고난이 필요함을 말했다. 떡상은 매일 먹는 말씀이었다. 분향단에는 늘 향을 피워 둔다. 기도가 꺼지지 않아야 함을 말했다. 성소를 통과해 지성소로 들어간다. 죄를 태우고 성찰하며 성령, 말씀, 기도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 전에 성막의 실제 크기를 체험하러 갔었다.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찢을 수 없는 휘장의 모습이다. 예수님이 죽으시며 이 휘장이 찢어졌다. 일 년에 한 번 제사장만이 들어가 뵈었던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매 순간 만나게 되었다. 이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감사가 깊어졌다. 성막을 생각하며 예배 때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할 지가 정리되었다.
5. 제사를 공부하며 나의 예배가 ‘드리는 예배’로 전환되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5제사를 살펴보았다. 소, 양이나 염소, 새까지 형편에 따라 드리는 번제는 나의 죄를 완전히 태우는 것을 말했다. 살아있는 동물을 죽이는 것, 그 끈질긴 생명력은 내 안의 죄성이 얼마나 질긴지 말해주었다. 각을 뜬 죽은 동물의 사체를 태우는 냄새를 하나님께서 향기롭다 하셨다. 우리의 죽음과 죄악이 사라짐을 기쁨으로 받으셨다. 예배는 그렇게 ‘드리는 것’이었다. 어느새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예배가 모든 것에 대한 나의 감사, 찬양, 헌금, 기도를 드리러 가는 예배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임재와 은혜, 기름부음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에 응답하시고, 그 임재 속에 용서와 치유가 됨을 알았다. 소제를 드릴 땐 곡식을 고운가루로 부숴야했다. 가루, 기름(감사), 유향(기도)으로 드리는 제사. 내가 가루처럼 갈아져야 예배가 되는 것이다. 제사는 나의 죄, 내 모습을 바로 보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절기마다 드려지는 제사는 1년의 일이었다. 나는 절기별로 정성들여 수고스럽게 준비하고 치뤄지는 제사처럼 예배하며 살았던가. 아이 챙겨 교회가기 바쁜 아침 유아실에서 영상으로 드려지는 예배에 내게 주시는 말씀이 무얼까 받으려고만 한 것 같다. 번제가 머릿 속에 그림처럼 그려진다. 펄펄 살아있는 나의 죄를 모두 태워 올려드리고 죄인인 나의 존재를 죽이는 작업을 예배의 자리에서 해야함을 알았다. 예배의 자리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로 다시 태어나야함을 깨달았다. 계속해서 나의 예배를 회복하여 새 사람을 입고 싶다.
6. 어려웠던 레위기가 크게 개인에서 시작하여 공동체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야기임을 정리하였다. 1-10장은 제사(예배), 11-15장은 음식, 출산, 나병, 혈루병에 대해, 16-27장은 절기에 대해 쓰여있다. 개인의 예배, 공동체 생활,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야기로 신앙 생활 자체였다.
7. 5대 광야를 전하며 나를 돌이키고 중심을 확인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거쳤던 5대 광야는 그리스도인이 신앙 생활을 하며 꼭 거쳐가는 5가지 문제였다. 무너진 기대, 물질 문제, 의미를 잃어버림, 원수 같은 사람, 지도자에 대한 실망. 5대 광야의 문제가 말씀으로 답이 나와있었다. 너무도 명쾌하고 힘이 되었다. 앞으로 답답한 모든 문제를 5대 광야에 대입하여 해결책을 찾으면 되었다. 5대 광야를 14명에게 전했다. 현재의 답답함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하나하나 우리의 문제를 들여다 보았다. 계속해서 내 마음을 예수님께로 돌이키고, 거듭난 내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내 속의 애굽에 대한 잔재를 지워갔고 앞으로도 계속 해야 했다. 그리고 나에겐 함께하는 공동체가 있음을 확인했다. 성경책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과 만나 전하는 나의 첫 전도 훈련이 되었다.
목사님과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 애굽, 광야, 가나안을 훑어보며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았다. 함께하는 교회에 처음 왔을 때, 꿈도 받았고 말씀도 받았음을 알았다. 그게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음이 확실히 깨달아졌다.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함께하는 교회에서 일련의 훈련과 소그룹을 통해 배우며 주께서 원하시는 나의 모습을 알아간다. 희미하고 불확실한 것이 확신의 걸음으로 변해간다. 걸음을 방해하는 내 안의 장애물을 제거해간다. 함께하시는 주님 손 꼭 붙잡고 사랑을 흘려보내는 지도자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배우고 자라 가야겠다. 성도의 성장과 누림을 위해 모두 바쳐 애쓰시는 목사님께 정말 감사하다.
1. 내 인생의 출애굽사건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확실히 하였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근심을 알고(출1-2장), 하나님이 내려오셔서(3-11장), 애굽인의 손에 견져내고(12장),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13-24장),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는 땅으로 데려가는(25-14장) 출애굽의 이야기가 내 인생의 사건으로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졌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건져내어 인도하시고 데리고 가고 계시는 것이구나. 분명 건짐 받은 자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 받은 자로 기쁨이 있었지만, 가끔은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걸까, 내가 잘 가고 있는 걸까 희뿌연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권유미는 함께하는 교회 성도로 부르심을 받아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 용서 받고, 누리고, 재 창조의 사역을 살기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목사님께서 로마서 1:1로 정체성을 재확인 시켜주실 때, 출애굽한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깨달아졌다. 하나님은 나를 함께하는 교회 성도로 부르셨고 하나님을 더 알고 누리며 결국 재 창조의 사역, 나의 회복으로부터 사람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심을 확신하였다.
2. 나는 지도자로 세워졌으나 내가 지도자임을 알지 못하고 노예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세는 애굽의 종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냈지만, 광야는 결핍의 땅이었고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물 달라, 돌아가겠다, 돌로 치겠다 하였다. 지도자 모세와 달리 백성들에겐 아직 애굽의 노예근성이 남은 탓이다. 목사님께서 노예 근성은 자원성이 없고, 남 탓을 하고, 불평과 원망, 미래를 보지 않고 성과만 보는 것이라 하셨다. 내 마음대로 살던 인생이 한 남자를 만나 두 아이를 기르고 부모님을 모시는 인생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다스리는 자, 지도자의 자리로 세우셨는데, 나는 아직도 내 자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고 이것 저것 불편한 것들을 보며 남편 탓, 아이들 탓, 부모 탓, 내 성과가 없음을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내가 지도자로 함께 서서 돕고 이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내 모습이 남편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예수님처럼 왕자의 신분으로 종처럼 섬겨야 함을 모르고, 종의 신분으로 왕 노릇 하려 했음을 완전히 돌이켰다.
3. 유월절 사건을 묵상하며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가족 구원, 나아가 공동체(교회)의 구원을 보았다. 어린 양의 피(예수님)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새 사람이 된 날을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 하였다. 무교병과 쓴 나물, 양고기를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허리띠와 신, 지팡이를 잡고 먹으라 하심은 구원의 긴박성과 말씀 먹으며 언제나 안주하지 말아야함을 나타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나의 거듭남이 나의 가족과 교회, 민족의 구원까지 이어졌다. 세워지고 헐어지는 것 같이 보이는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로 가능함을 배웠다. 내 가정 공동체, 교회 공동체가 신앙을 지켜 나가는데 핵심이구나 느꼈다.
4. 성막을 공부하며 예배의 순서를 새겼다. 성막의 문은 10m로 아주 넓고 문은 실로 짜여져 가닥가닥 늘어진 형태였다. 구원의 문은 넓지만, 혼자 들어가야했다. 번제단에 나의 죄를 대신한 제물을 태우면 온갖 냄새와 그을음이 날렸다. 엉망 진창인 우리 삶의 자리의 모습이었다. 물두멍에서 자기 성찰을 갖고, 성소에 들어간다. 성소에는 금촛대와 떡상, 분향단이 있었다. 금촛대는 성령을 상징하며 금 한 달란트로 두드려 만들어야 하는데, 고난이 필요함을 말했다. 떡상은 매일 먹는 말씀이었다. 분향단에는 늘 향을 피워 둔다. 기도가 꺼지지 않아야 함을 말했다. 성소를 통과해 지성소로 들어간다. 죄를 태우고 성찰하며 성령, 말씀, 기도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 전에 성막의 실제 크기를 체험하러 갔었다.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찢을 수 없는 휘장의 모습이다. 예수님이 죽으시며 이 휘장이 찢어졌다. 일 년에 한 번 제사장만이 들어가 뵈었던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매 순간 만나게 되었다. 이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감사가 깊어졌다. 성막을 생각하며 예배 때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할 지가 정리되었다.
5. 제사를 공부하며 나의 예배가 ‘드리는 예배’로 전환되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5제사를 살펴보았다. 소, 양이나 염소, 새까지 형편에 따라 드리는 번제는 나의 죄를 완전히 태우는 것을 말했다. 살아있는 동물을 죽이는 것, 그 끈질긴 생명력은 내 안의 죄성이 얼마나 질긴지 말해주었다. 각을 뜬 죽은 동물의 사체를 태우는 냄새를 하나님께서 향기롭다 하셨다. 우리의 죽음과 죄악이 사라짐을 기쁨으로 받으셨다. 예배는 그렇게 ‘드리는 것’이었다. 어느새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예배가 모든 것에 대한 나의 감사, 찬양, 헌금, 기도를 드리러 가는 예배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임재와 은혜, 기름부음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에 응답하시고, 그 임재 속에 용서와 치유가 됨을 알았다. 소제를 드릴 땐 곡식을 고운가루로 부숴야했다. 가루, 기름(감사), 유향(기도)으로 드리는 제사. 내가 가루처럼 갈아져야 예배가 되는 것이다. 제사는 나의 죄, 내 모습을 바로 보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절기마다 드려지는 제사는 1년의 일이었다. 나는 절기별로 정성들여 수고스럽게 준비하고 치뤄지는 제사처럼 예배하며 살았던가. 아이 챙겨 교회가기 바쁜 아침 유아실에서 영상으로 드려지는 예배에 내게 주시는 말씀이 무얼까 받으려고만 한 것 같다. 번제가 머릿 속에 그림처럼 그려진다. 펄펄 살아있는 나의 죄를 모두 태워 올려드리고 죄인인 나의 존재를 죽이는 작업을 예배의 자리에서 해야함을 알았다. 예배의 자리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로 다시 태어나야함을 깨달았다. 계속해서 나의 예배를 회복하여 새 사람을 입고 싶다.
6. 어려웠던 레위기가 크게 개인에서 시작하여 공동체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야기임을 정리하였다. 1-10장은 제사(예배), 11-15장은 음식, 출산, 나병, 혈루병에 대해, 16-27장은 절기에 대해 쓰여있다. 개인의 예배, 공동체 생활,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야기로 신앙 생활 자체였다.
7. 5대 광야를 전하며 나를 돌이키고 중심을 확인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거쳤던 5대 광야는 그리스도인이 신앙 생활을 하며 꼭 거쳐가는 5가지 문제였다. 무너진 기대, 물질 문제, 의미를 잃어버림, 원수 같은 사람, 지도자에 대한 실망. 5대 광야의 문제가 말씀으로 답이 나와있었다. 너무도 명쾌하고 힘이 되었다. 앞으로 답답한 모든 문제를 5대 광야에 대입하여 해결책을 찾으면 되었다. 5대 광야를 14명에게 전했다. 현재의 답답함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하나하나 우리의 문제를 들여다 보았다. 계속해서 내 마음을 예수님께로 돌이키고, 거듭난 내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내 속의 애굽에 대한 잔재를 지워갔고 앞으로도 계속 해야 했다. 그리고 나에겐 함께하는 공동체가 있음을 확인했다. 성경책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과 만나 전하는 나의 첫 전도 훈련이 되었다.
목사님과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 애굽, 광야, 가나안을 훑어보며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았다. 함께하는 교회에 처음 왔을 때, 꿈도 받았고 말씀도 받았음을 알았다. 그게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음이 확실히 깨달아졌다.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함께하는 교회에서 일련의 훈련과 소그룹을 통해 배우며 주께서 원하시는 나의 모습을 알아간다. 희미하고 불확실한 것이 확신의 걸음으로 변해간다. 걸음을 방해하는 내 안의 장애물을 제거해간다. 함께하시는 주님 손 꼭 붙잡고 사랑을 흘려보내는 지도자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배우고 자라 가야겠다. 성도의 성장과 누림을 위해 모두 바쳐 애쓰시는 목사님께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