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간증나눔
출애굽기_김성주
기타
작성자
김성주
작성일
2022-12-30 14:55
조회
118
오랜 시간 출산과 육아를 하다가 막내가 어린이집을 적응하면서 오전에 시간이 생겼고 정년이 얼마 남지 않으신 목사님과 대면으로 소그룹을 너무 하고 싶었기에 수업이 가능한 요일을 맞추어 출애굽기반을 신청하게 되었다. 약 10년 만에 하게 된 목사님과의 소그룹이라 목사님을 적응하기가 어려웠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하였다.그러나 나는 무엇을 원했기에 설레었던 걸까...깨어지고 부서지고 말씀 앞에 조명되는 자리인데 나는 세워지고 위로받고 공감만을 기대했던 것임을 보게 되었다.
죄에 대한 설교는 청년 때부터 익히 들었던 설교였고 오랜 시간 함교에 다니며 설교를 듣고 셀 나눔을 하는 경력이 더해질수록 나는 참으로 깨달아 거듭난 성도인 건지 학습적으로 말씀이 익숙해진 건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출애굽기 강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김성주는 함께하는 교회 집사로 부르심을 받아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 용서받고 누리며 재창조의 사역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외치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무런 감동도 벅차오름도 없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거듭되는 종교 생활과 종교 행위를 통해 스스로 의로운 자로 여기게 되었고 그렇게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주님 앞에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또 주님께 드려지던 나의 의로운 기도 속에는 나의 불안함을 교묘히 숨겨 주님의 나라를 세우듯 기도드리기도 했다.
나 자신과 세상의 판단이 나를 의롭게 여기는 기준의 잣대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눈에 들고 띄기를 원했으며 하나님 앞에 나를 비추이고 돌이키기보다 내가 높아지는 즐거움을 택하며 그 길들을 갈망하는 이중적인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의로운 자로 여기면서도 스스로 책망했고 스스로 해결할 힘이 없다는 것도 동시에 느끼며 발버둥 치며 스스로 죄를 이겨보려 하거나 기도로 매달려 보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계속되는 추악함과 또 새롭게 발견되어지는 죄 앞에서 무기력해졌다.이때부터 참 건강했던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고 울다가 웃다가, 우울증 환자가 된 것 같았다. 지금껏 아기를 3명이나 낳았고 이제 내 생에 출산은 더 없다 하며 출산 진통의 기억을 잊었는데 매일매일 정신적 진통을 겪었다. 눈뜨는 게 괴로웠고 밤이 되면 악몽을 꾸곤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가 너무 사랑하는 우리 첫째 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반드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셨기에 이 사건 또한 우리에게 가장 좋으신 뜻으로 주셨을거라는 마음으로 그냥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과 질문들이 올라왔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밤낮으로 보호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우리 루아는 하나님의 자녀잖아요 그런데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거죠?”
하나님이 항상 보호하신다는 찬양이 나올 때마다 받치는 마음이 올라왔다.
사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마냥 나를 지켜주실 거야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하나님은 나를 세워주시는 분, 보호하시는 분, 날 지키시는 분이라는 이 명제들은 오로지 나의 육을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음을 사랑하는 자였던 것을 보게 되었다.
죽기를 두려워하는 나는 하나님께 향한 질문을 계속 이어 나갔다.
“하나님 왜 아무런 흠도 없고 죄도 없는 아이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나요? 차라리 저를 때리시면 되잖아요!”
그때에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음성으로 말씀 주시기를 ‘아무런 흠이 없고 죄가 없는 내 아들을 성주 너를 너무 사랑했기에 십자가에 내어 주었다.’ 그 음성을 듣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분명 고통만이 놓인 사건에 신기하게도 내 마음에 생명으로 종결되었다. 그때에 십자가를 지고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침 뱉음 당하시고 모욕을 당하시고 맞으시고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셨던 하나님 아빠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출애굽기 소그룹 시간에 배웠던 구약시대 제사 방법이 생생하게 떠올랐는데 흠이 없는 짐승에게 내 죄를 전가하고 그 짐승을 죽이는 것이 한 번에 죽어지지 않아서 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반나절이나 걸리도록 짐승을 죽여야 죽어지는 그렇게 제사를 드리는 그 사람의 모습이 나로 보였고 예수님을 두 번 세 번 십자가에 못 박고 싶지 않고 싶다는 마음과 가볍게 여겼던 죄가 경멸스럽게 여겨졌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라는 찬양이 떠오르면서 잘 모르겠지만 이런 것이 연합인 걸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인정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고 주님과 나는 연합된 것 같았다.
평소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고 경멸했고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했다. 그런 나는 얼마나 소중하며 사랑받을만한 존재인지 나를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신 예수님의 희생이 어떤 것인지를 이 고난을 통해 더 깊이 알게 되었고 나를 스스로 존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를 아프게 했던 이들의 존재와 행위가 구분되어져 보였고 주변 사람들 이웃들이 모두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고 싶어졌고 생수의 강이 내게서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고난 속에서, 소그룹을 통해서 나는 매일 말씀을 붙들게 되었고 말씀의 영향력을 알게 되었다. 말씀 안에 해답이 있었고 위로가 있었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사랑이 있었다. 처음 이 마음 아픈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원망하고 억울하고 분하고 괴로웠는데 그 고난의 여정속에서 받은 십자가의 은혜에 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하심에 참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전에 나에게 아무런 감흥이 없던 그 생명의 말씀은 이제 내 마음을 울렸고 내 것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김성주는 함께하는 교회 집사로 부르심을 받아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 용서받고 누리며 재창조의 사역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주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성주를 해방하였음이라.]
출애굽기 말씀을 전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14번의 반복되는 숙제를 하면서 질문지의 내용과 그에 맞는 말씀이 나의 것으로 새겨졌고 나눔 가운데 깊이있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분의 나눔 속에 말씀으로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는 은혜가 주어졌다.
소그룹 수업은 끝났지만 그 수업을 통해, 고난을 통해 나에게 새겨진 흔적으로 나는 또 삶을 살아간다. 성령님의 간섭하심과 깨닫는 축복과 고난을 통과하며 앞으로의 날들이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으로 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