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간증나눔

다준학교 8기 김혜리

다준학교
작성자
김혜리
작성일
2020-07-07 01:02
조회
54

나에게 다준 8기는 코로나가 가져다 준 뜻밖의 행운같은 것이었다.
해외 출장과 학회가 모두 취소되어 생각지도 못한 여유가 생겼고, 나는 이 기회를 다준학교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간절히 훈련받고 싶었다거나 뭐 그런건 아니었다.
그냥 교회에서 숙박을 하니 매일 새벽기도 가기에 편하겠다 싶은 그 정도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의 다준 생활은 내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강의가 주로 자정 넘어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새벽기도에 가고싶으면 3-4시간 뒤에 다시 일어나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럴 수 있는 체력을 소유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유*민 형제라면 모를까, 어쨌든 나는 절대 아니었다.)
정신력으로라도 버텨보겠다며 첫 일주일은 어찌어찌 새벽기도에 참석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내 에너지의 80%를 잠에서 얻는 사람이었기에, 잠을 제대로 못자니 집중력과 건강이 바닥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일 뿐만 아니라 겨우 잡아놓았다 싶었던 말씀, 묵상, 기도생활까지 완전히 뒤틀려버리자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그렇다고 강의를 들으면서 깨닫는 것과 얻는 것이 컸으므로 다준을 포기하긴 싫었다.
그렇게 짜증스러움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끼며 다준 중반까지 흘러갔던 것 같다.

나는 신앙에 있어 굉장히 거슬리고 신경쓰이는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성령님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었다.
방언, 통변, 예언, 축사, 신유 등의 은사들이 왜 필요한지, 무슨 유익이 있는지 이해가 안갔다.
그러면서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용납이 안됐다.
내 하나님은 굳이 그런게 아니더라도 충분히 나에게 일하실 수 있는 분인데 도대체 왜?
그런 것들 없이도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면서 내 기도에 응답하셨고, 반응하셨고, 또한 나를 기적처럼 회복시키셨는데 굳이?
(사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뭔지 모를 얇은 가림막같은 무언가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것이 크게 문제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이러한 나의 반응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건전하며 당연한 것인줄 알았다.
다준을 하면서 알게된 것은, 내가 감정과 의지를 꽉 붙잡고 있을만큼 이성이 매우 비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기도하다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낌새가 있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왜 그러냐고, 하지말라고 다급하게 붙잡을 만큼 겁까지 많더라.
이런 나를 하나님은 참 오래 기다려주셨고, 이제 더는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이번 다준학교를 통해서 나에게 본격적으로 일하셨다.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기 민망하니 결론만 말해야겠다.
굳이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서 그 성령님한테 아무 일도 하지말라고 붙잡고 있던 내가 멍청했다.
굳이 하나님이랑 그 얇은 가림막 너머로 대화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성령님이 일하시는대로 나는 순종하면 되는 거였고, 내가 성령님을 이해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게 참 말로는 쉬운데 직접 해보면 절대 안쉬운게 문제다. 진짜 죽을 것같이 이상하고 싫었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한테 엄청 고집부리고 버텼다.)
도대체 예전엔 어떻게 기도했나 싶을만큼 지금은 기도와 예배가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다준을 안했다면 내가 내 이성으로 하나님한테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오래걸렸을지 가늠이 안간다.
성령님한테 여전히 마음 못열어서 낑낑거리고 있었겠지.

사실 간증문에 적은 자랑은 실제 내가 얻은 것들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된다. (게으름과 피곤함....으로 인해 더이상 적을 수가 없다...)
분명 다준을 듣기 위해선 대가 지불이 필요하고, 어쩌면 그것은 당신이 쉽사리 포기하기 힘든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대가가 아깝지 않을 만큼 넘치게 부어주시는 분이다.
그러니까 세월을 아끼고 싶다면, 제발 들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