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간증나눔

다준 8기 간증문

다준학교
작성자
박찬성
작성일
2020-07-04 11:11
조회
234
다준학교 간증문


코로나가 한참 발발하던 시간에 다들 코로나로 인해 떨고 있을 때, 저는 암 재발을 알았고 코로나가 아닌 다른 것으로 떨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코로나가 무서웠지만, 저한텐 코로나 따위로 다가왔습니다. 주치의가 있는 경북대병원에서 우측폐 3분의 1을 절개했습니다.
흉부외과 병동이었던 그곳은 벽 한칸만 넘어가면 코로나 확진자들이 위급한 상태로 있는 장소였습니다.
대구에서만 하루 900명씩 감염되던 그때, 매일 한명씩 코로나로 죽던 그때 나는 어찌할바를 몰랐고, 혼자 죽음의 능선에 서 있었습니다.
퇴원하고 너무 힘들었던 시기, 교회 옥상에서 혼자 울고 있던 순간에 우연히 황동한 목사님이 전화가 오셨습니다.
만나서 오리고기를 먹으며 얘기를 하였습니다. 너무 솔직한 대답들과 한편으로 나도 모르게 안심되었습니다.
한 평생 살면서 저 분처럼 살면 후회없겠다.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만이 가득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황목사님을 보고 드는 생각은 '청지기' , 말로 정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그나마 이 단어가 정확하지 않나 싶습니다.
오리고기 한 조각을 들며 오리 한마리 중 이 한조각 만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할 만큼 하나님은 크시다고 말씀하신 황목사님을 보며, 다준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다준학교까지 시간이 있어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때, 제게 드는 생각은 나는 살 수 있을까? 산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다 하고 난 뒤엔 내가 가는 곳은 어딜까? 나는 왜 태어났나? 나는 어떤 존재지? 라는 의문이 들었고 이 의문들은 함께하는 교회 담벼락에서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상황적으로 감정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하나님은 살아계시지만 나에게는 무관심한 분, 상관없는 분 으로 여겼습니다.
일명 존재론적 무신론이 바로 저였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찌 이럴수 있는가. 피할길을 여시고 아니, 피하기 전에 그 위기에, 아픔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것이 능력이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의 기리스탄들이 고문당해 죽어갈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나?  이런 질문들이 내겐 꽉 찼습니다.
신대원에서 혼자 기도하며 내 죄로인해 고민하던 그때 로마서 8장 14,16절의 말씀으로 내게 아들이라고 직접 말씀하신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특별하게 여기면서 나름 열심히 기도도 하고 발버둥 쳤다고 자부하는데, 왜 이런 나를 궁창에 밀어 넣으시는가. 너무큰 질문이었고 이 질문이 해결되지 않으면 더이상 신앙생활도 안될것 같았습니다.

다준을 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1. 말씀
말씀은 그저 의무적으로 보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묵상은 따분한 것이였고 어떠한 기대와 교제가 일어나지 않는 문자로서 글일뿐이 였습니다 .
하지만 지금 말씀은 너무나도 달달합니다. 특히, 주님의 음성을 말씀중에 가장 많이 듣습니다. 내 영을 회복시키는 귀한 시간이 묵상시간 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다 적혀있고 그 힘은 과학으로 증명할수 없을 정도로 신비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기름부으심 강의 시간을 통해 말씀이 히브리서의 말씀처러 살아서 생동감있게 일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2. 방향성
'내면대폭발'을 하면서 많이 깨졌습니다.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 것 채우기 바빴다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신대원에서 기도하는 것도 일로서, 하루의 일과로서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서 여겼습니다. 그래서 기도시간이 지루하고 잠오는 시간이었고, 그걸 이기고 기도하기란 참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일중심인 내게 관계란 사치스러운 것 이었습니다. 일하기도 바쁜 시간에 인격적 관계라는 것은 철없는 사람들의 소리 같아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선 일보다 관계셨고 결과보단 과정이셨습니다. 내가 주님과 만나기 위해 임재를 위해 비집고 들어가는 노력이 아니라 주님의 크심을 인정하고 그 임재로 다스림 받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관계의 연습을 해야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자유함을 느낍니다. 눌리는 것도 속는 것중 하나라고 하셨도 목사님 말씀처럼, 메세지성경 로마서의 말처럼 서류가방을 잔뜩 들고 업무처리를 해야만 만나는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시기 때문임을 배워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프다고 말할 줄도 알아야 겠지만 그 아픈부위를 붙잡고 아버지께 만져달라는 것이 인격적인 관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3. 기도응답
앞서 말한것 처럼 다준하기전에 하나님은 살아계실지언정 나와는 무관한 하나님이었습니다. 묵상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묵상 도중 방언으로 하나님께 물어볼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이젠 나의 하나님이 되길 원하신다." 이 말씀은 그 후 기도 때도 몇번이고 같은 마음으로 들려줬습니다. 이 모든게 다준 마지막 날 합쳐지며 하나님께서 존재론적 무신론으로서 하나님이 아니라 이젠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말씀하셨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다준이 끝나서 한편으로는 너무 아쉽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렵습니다. 영적 공동체에서 나와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떨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젠 목사님 말씀처럼 자가호흡하여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내가 살아야지 주변이 살고,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산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아 알았습니다. 더 배우고 싶고 알고싶은데, 당분간은 그렇지 못한것 같아 슬픕니다.
타 교인인 저를 받아주신 목사님과 다준 동기들 함께하는 교회에 진정어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