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간증나눔

[17기 사역자반]무전전도여행 3청년 박시준

작성자
박시준
작성일
2019-05-03 15:40
조회
361
무전전도여행 간증문
17기 사역자반
3청년 C40 박시준

17기 사역자반, 코칭반을 끝내고 떠나야하는 무전전도 여행을 약6개월을 미루고 무전전도여행을 준비하였습니다.
장년부 그룹과 청년부 그룹을 나눠서 조를 정하였습니다.

3월24일 17사역자반 청년부 모여 조를 정하였습니다. 제가 속한 조는 1청 최영진, 박세혁
2청 이유림, 박경남, 한믿음 3청 박시준 6명이 조를 구성하여 준비 하였습니다.

3월 28일 첫모임시작 무전전도여행지를 정하였습니다. 지도를 가져와서 우리가 갈 지역들을
나누고 1차로 도를 나누고 2차로 정해지 도안에 군을 나눠 제비뽑기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6명 모두가 지도위에 두손 모아 기도를 하고 조장인 경남이가 뽑았습니다. 1차로 뽑은 도는
전라북도였습니다. 2차로 14개 시,군을 적고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뽑힌 곳은 전라북도 고창군 이었습니다 .
무전전도 여행지가 선정되고 각자의 기도제목과 무전전도 여행을 위한 기도제목을 나눴습니다.
저의 기도제목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무사히 다녀 올수 있기를...
무전전도 여행을 위한 기도제목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나눴습니다.
무전여행동안 우리들만의 규칙을 정하고 짝꿍을 정했습니다.
규칙 1. 화날 때 박수치기.
규칙 2. 지각비 1분당 100원
규칙 3. 삐지지 말고 바로 얘기하기
규칙 4. 개인행동 금지
규칙 5. 기도 순서 정해서(알람 맞추기)
규칙 6. 저녁 묵상 나눔(다음날 묵상)
짝꿍 : 박시준–이유림, 박경남–박세혁, 한믿음–최영진 으로 2인 한조가 되어
사전모임 기간을 비롯하여 무전전도 여행 동안 서로 챙겨주기로 하였습니다.
전라북도 고창군을 정하고 규칙과 정해진 조원들을 위해 다 같이 기도회로 준비하였습니다.

4월 7일 목사님 면담과 두 번째 사전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목사님과 따뜻한 차한잔을
마시며 무전전도 여행을 가기 전 준비해야 할 것들, 무전전도 여행의 목적을 들으며
마음가짐을 다시금 잡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4월 14일 세 번째 사전모임은 무전전도 여행을 가기전의 각자의 마음을 나누고 기도회를
진행하였습니다. 무전전도 여행지 가운데 우리가 무엇을 할지도 나누고 정하였습니다.
우리조의 특징은 믿음, 경남, 유림이가 노래를 잘 불러 버스킹을 해보자고 정했습니다.
각자 악기 하나씩을 맡아서 악기와 함께 노래를 부르자며 계획을 세웠습니다.
기도회를 통해 세워진 계획과 여행지 고창군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였습니다.

4월 21일 마지막 사전모임을 하였습니다. 그전 모임동안은 걱정과 염려가 올라오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염려와 걱정이 올라왔습니다. “도착하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지, 우리 중에
누군가가 아프면 어떻게 하지,  일을 해야 할까” 사전 모임 중에 계속해서 조원들에 묻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올라오는 생각과 근심이었습니다.
내안의 걱정, 염려를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야 하는 것을 생각하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아갈 수 없고 물러설 길 없을 때에 주님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4월 25일 드디어 무전전도 여행을 떠나는 날
전날부터 비소식이 예보되어 있었다. 퇴근하고 교회로 향하는 나에게 하늘은 왠지 여행을 떠나는 저의 마음
을 시험하는듯했다. ‘비가오고 바람 불고 추운데 갈 수 있겠니?’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뿐 함께하는 교회
새 가족부터 지금 사역자반까지 달려온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나에게 잠시의 싸움뿐이었습니다.
7시 40분 교회도착 16기 사역자반 선배 기수들이 기다리며 간식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시간에 맞춰 조원들과 간식을 챙기고, 운전을 섬겨주는 석진석, 이동우형제의 도움을 받아 출발을 하였습니다.
8시에 출발 3시간 반을 달려 전라북도 고창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정확한 목적지가 없어서
운전자 진석에게 목적지를 맡겼습니다. ‘진석이가 선택하는 곳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노라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남고창 IC에서 조금 떨어진 고수면사무소였습니다. 면사무소를
등지고 앞을 바라보면 어두운 도로만 보였습니다. 운전을 섬겨준 진석, 동우를 기도로 마무리
하며 보내주고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비가오고 바람이 불어 밤길이 더욱 춥고 차가웠습니다.
도록위의 이정표를 바라보고 고창방향으로 계속해서 걸어갔습니다. 쉴 곳을 찾아서,
고창 읍내까지 걸어갔습니다. 약 20여분을 걸어 고창 공용 버스터미널에 도착 젖은 몸을
말리며 잠시의 휴식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방이 뚫려 있어 자거나 오래 쉴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고창 박물관을 걷고, 박물관에서 고장 전통시장으로 걷고, 시장에서
고창 소방서로 걷고 11시반부터 쉴 곳을 찾아 이동한 시간이 새벽 2시가 다되어 갔습니다.
짜증이 나고, 내안의 인내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비라도 안 오면 괜찮을 텐데...
진석이가 마을에 내려주면 좋았을 텐데.... 내안에 처해진 상황과 주변을 탓하고 있는 나를
보았습니다. 내 안의 하나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휴식, 편안함을 찾는 굶주린 저 밖에 없었습니다.
고창 소방서에 들려 쉴 곳을 알아보았지만... 대답은 ‘쉴 곳이 없다’라는 말 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소방서를 뒤로하고 우리가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면서 교회를 찾기로 했습니다.
빛과 소금교회. 열방의 빛 장로교회... 두 세곳의 교회를 찾았지만, 깜깜한 밤이라 문을 열어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열방의 빛 장로교회를 지나 갈 때 버려진 버스가 있었습니다.
버려진 버스에 문이 열려있고, 비를 피하고 잠시 휴식을 가질 수 있는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
하였습니다. 그러나 망설이고 망설였습니다. ‘버스에 주인이 있는게 아닐까?’, ‘함부로 쉬어도 될까?’ 그러나 망설임도
피로고하고 힘든 나에게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버스에 문을 열고 6명이서 각자 의자 앉아서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버스 안은 너무도 춥고 아늑하지 못했습니다.  20분채 되지 않는 동안 휴식의 감사함 보다 불평, 불만이 올라오는 나였습니다.
나는 왜 계속해서 욕심이 올라오고 욕구가 커지는 걸까하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1시간 정도 지나서  새벽4시가 넘고 버려진 버스에 나와  다시 새벽기도가 있는 교회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마을에 보이는 십자가를 따라 찾아 다녔습니다.
새벽기도가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도착한 곳은 ‘순복음 제일 교회’였습니다.
문은 열려 있으나, 깜깜하고 어두워 새벽기도를 드릴까?
망설였습니다. 교회 이름도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로 교회가
맞는지 의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타지방에 이단 교회가 많다고
하는 소리를 들어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음이가 휴대폰을 가지고 와서 검색을 해서 이단이 아닌 것으로 확인하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기척으로 2층 목사님 방에 불이 켜지고 목사님께서  내려 오셨습니다. 목사님께 새벽기도를 드리러 왔다고 말씀드려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시골 작은 교회, 섬기는 분 없고, 목사님 혼자 예배인도와 음향을 함께 하시지만 목사님의 말씀은
쉴 곳을 찾은 우리에게 단비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목사님은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우리는 무전전도여행중이라고 말씀드리고 교회에 잠시 쉴 수 있을지 허락을 요청하였습니다.
목사님은 흔쾌히 예배당을 허락하여 주시고 2시간정도 잠자리를 내어 주셨습니다.
전기장판과 이불을 가져다주셔서 몸을 녹이고 쉴 수 있었습니다.

4월 26일 금요일 장성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뜻 밖에 광주까지..
눈을 붙인지 얼마 후 목사님께서 라면을 사다주셔서 아침 첫 끼니를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뒷정리를 마치고 우리가 섬길 수 있는 마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목사님께서 알려주시는 방향대로 마을 찾아 가기로 했습니다.
큰 도로를 따라 10여분을 지나 백양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백양마을 입구에 보건진료소가
보였습니다. 보건소안 보건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마을회관을 찾아 회관 안에 할머니께
일손을 도울 수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어제부터 내린 비는 계속해서 내렸고, 고창은
밭농사를 짓고는 곳으로 비가 오면 일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백양마을 나와서
건너편 마을로 이동하였습니다. 와촌마을에 이르러 마을회관에 일손을 도울 수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같았습니다. 비가오니 일을 못한다고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하셨
습니다. 이대로 고창에 있어야 하나? 계속해서 시간만 흐르고 고창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을회관 옆 정자에서 잠시 쉬면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새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비가 안 오는 곳으로 옮기자고 고창이 아닌 영광으로 가보자 했습니다.
와촌마을 벗어나 도로를 15분쯤 걷고 고수마을 보였습니다. 고수교회에서 잠시 쉬면서
똑같은 문제로 다 같이 고민하였습니다. ‘영광으로 가야하나?’ ‘고창에 남아야 하나?’
고수교회 로비에 모여 손을 잡고 찬양과기도로 하나님께 묻기로 하였습니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찬양을 받아 주소서♪
찬양을 받으시는 주님 우리가 어디로 갈지 몰라 해매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 주세요
기도가 끝난 후 각자의 감정과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는
‘장성’으로 정해졌습니다. 고창 땅이 아닌 최종 목적지 부산 땅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것.
고수면을 지나 남고창IC에 이르러 고속도로 안내사무실에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장성으로 가는 길을 안내받으며 산과 강을 지나 걸어갔습니다.
장성 가는 길이 너무나 길었지만, 안내사무실에서 받은
지도를 보며 목적지가 생긴 것에 기뻤습니다.
무모하지만 주님을 믿고 가보자! 해보자! 시골 도로를
걸으며 마을을 지나가는 트럭에 손을 내밀고 히치
하이킹을 하기로 했습니다. 몇몇의 트럭은 우리를
보고 무시하며 지나가기 일쑤였지만, ‘끝내 승리하리라!’
다짐하고 계속해서 손을 내밀어 트럭을 얻어 탔습니다.
우리가 탄차는 고창 문수사까지 가는 차량이었습니다.
트럭을 타며 차가운 공기도 우리에겐 너무나 시원했습니다. 꿀맛 같은 기분 이래서 히치하이킹을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문수사 입구에 다 와서 트럭기사님은 장성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여 주셨습니다.
문수사를 우회하여 20여분 산을 올라 깔딱고개를 도착하면 장성이 보인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깔딱고개를 향해계속해서 걸어갔습니다.
20여분 지나 축령산고개라는 깔딱고개를 만났습니다.
고개에 올라갈 때쯤 어르신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 보였습니다.
밖에서 지켜보고 계신던 아저씨께서 차 한자하고 가라고 초대해주셨습니다.
아저씨 집은 많은 책과 손으로 빚은 도자기로 가득했습니다.
산에는 없을꺼 같은 음식인식 장치 ‘지니’도 있었구요.
34살에 산에 올라와 33년을 사셨다고 하시는 아저씨는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산을 지키며 살고계셨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말씀은 ‘하늘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을 기억한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욕심을 내고 애를 쓰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아저씨의 직업은 짐착컨대 창작예술인으로
‘세심빗’을 만들어 창작활동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무전전도를 마치고 그분을 검색하니
축령산지킴이로 유명하신 분이었습니다. ‘세심빗’의 의미는 3월3일 3시33분에 완성했다고
하면서 숫자의 의미를 두시는 분이였습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다시 장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고개를 넘어 장성으로 들어와 처음 마주한곳은 영화‘태백산맥’
촬영지로 알려진 장성 금곡영화마을을 지나갔습니다. 비가 온 뒤라 산속에 안개가 자욱하게
있는 경치와 색색깔 산속 나무는 답답한 도시속에 있던 저에게 꽉 막힌 속을 뚫어주는 청량제
같았습니다. 마을 안에 집들도 영화 속 그 느낌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고, 너무나 조용하고
풍요로워 보였습니다.
첫 날부터 비바람에 잠자리 못 찾아 짜증과 어리광을 부리던 저에게 지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산을 내려오며 다시 한번 우리들은 히치하이킹을 타기로 했습니다.
성읍까지 가서 쉴 곳을 찾아보자고 방향을 새로 잡았습니다.
처음 할때와 마찬가지로 쉽사리 얻어 탈수 가 없었습니다. 30분을 지나 산에서 내려오는
트럭을 가까스로 타게 되었습니다. 얼핏 듣고 장성 정류장까지 태워주신다고 하셨는데
감사하게 장성시내 장성역까지 도움을 받아 쉽게 내려 올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성역에 도착하니 5시가 넘어 더 이상 이동이 무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금요일이니 금요 기도회가 있는 교회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장성제일교회를
비롯한 7개의 교회를 2시간 동안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금요 기도회를 하는 교회는
단 한군데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장성은 시골이고 금요 기도회를 드리러 오는 사람이
없다보니 하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간혹 한다고 하지만 격주로 하다 보니 우리가 오늘날은
예배가 없는날 이었습니다. 아침부터 걷기 시작한 우리 조는 한계에 다 왔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더 이상 걸을 힘도 없었습니다. 장성역으로 복귀하여 다 같이 잠잠히
기도하며 어디로 가야할지 묻기로 하였습니다. 장성역앞 등나무 아래 벤치에서 각자 기도하며
하나님께 묻고 음성을 듣고 가기로 했습니다.
♬안개가 날 가리워 내 믿음 흔들리려 할 때 나 주님께 나아가네♪
♪주님은 산 같아서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셔 눈을 들면 보이리라 날 위한 그 사랑♬
‘하나님 너무 힘듭니다. 장성의 많은 교회가 우리들 하나 쉴 곳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야할까요?’ 장성역 앞 도르는 광주로 가는 고속도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기도 후 나눔으로 우리는 광주로 가서 도움을 받기로 목적지로 정하였습니다.
20분 동안 장성역 앞에 서서 계속해서 손을 흔들어 차를 얻어 타기로 했습니다.
저녁 7시 반이 다되어 갈 무렵 승용차 한데가 우리 앞에 섰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분은 조수석 창문을 내려 ‘어디로 가냐?’고 물으셨고 우리는 광주로 가야해서
태워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6명인데 태워 주실수 있을까요?’ 그분은 잠시 생각하시다가
흔쾌히 태워 주셨습니다. 조수석, 뒷자석, 트렁크까지 우리가 점령하고 광주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만에 광주까지 내려가게 해주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과 능력으론
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태워 주신분 차를 살펴보니 룸미러에 십자가가 있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은 극동방송을 듣고 계셨습니다. 할렐루야!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분은 장성 예비군대 대장이셨고, 광주중앙교회 집사님이셨습니다. 집사님께서는 자기교회에
금요 기도회를 드리니 가지 않겠냐고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광주까지 차를 얻어 타고 예배를
드릴수 있다니 장성에서 많은 교회로 허무하고 짜증이 났던 일들이 까마듯 잊어 버렸습니다.
광주에 교회에 다왔을 때에 예배를 드리고 저녁을 사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거구나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이 무일푼, 무능력일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쓰신다는 것’을
금요 기도회의 말씀 또한 요셉 이야기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
자살, 우울은 결코 하나님께 은혜로운 것이 아닌 것을 살면서 하나님의 창조목적 대로
살며 교회, 가정, 공동체를 섬기며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경험하고 누려야 하는 것을 깨달았습
니다. 광주중앙교회 예배당을 찾기 위해 해맬 때 1층 교회사무실에 맞주친 분이 담임 목사님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막힌 타이밍은 그날 저녁까지 넘쳐 났습니다. 안내 해주신
담임 목사님은 우리들에게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하셨습니다. 무전 전도여행중
임을 말씀드렸고, 목사님께서는 직접 잠잘 수 있는 방과 저녁을 대접해주셨습니다.
60년 넘는 광주중앙교회는 4층이 되는 큰 건물 교회로 교역자만 37명이 되는 큰 교회였습니다.
좋은 교회에서 저녁과 잠자리 받으며 무전전도여행 둘째 밤을 보냈습니다.

4월 27일 광주에서 미아되어 방황하는 우리들....
새벽 5시에 일어난 우리들은 새벽기도를 드리기 위해 예배당을 찾았다.
어제 금요 기도회보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 왔고, 예배 분위기도
고요하고 평안하였습니다. 어제 많은 일들을 행한 우리들은 아침 일찍부터 나갈 수 있는 기력
이 없었다. 그들 가운데 나는 ‘아침부터 서둘러야 하지 않나?’ ‘가만히 있으면 안 될 텐데..’
걱정이 올라왔다.
아침시간에 2시간정도 휴식을 취하기로 정하고 다 같이 모여 기도하고 각자 휴식을
가졌다. 오전10시 드디어 광주를 벗어나기 위해 짐을 싸고 교회를 나왔다.
문제가 발생했다. 여기는 시골이 아니라 도시다. 도시에서 차를 얻어 타는 것은
‘정말 무리할 수 있다’라는 것을 광주중앙교회 맞은편 도로는 부산, 순천,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도로 입구였다.
‘맞은편에서 얻어 타볼까?’, ‘다른 교회나 식당에서 일해서 도움을 받을까?’
우리는 머든지 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맞은편 고속도로 입구에서 관광버스, 승합차를
잡아서 가보기로 했다. 정말 생각대로 하고 있구나! 아무도 세워주거나 태워 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어제까지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만져주셨는데... 내 상태는 무전전도 여행첫날과
달라진 것이 없구나! 광주비엔날레 박물관을 돌아 걸어서 고속도로를 지나가려 했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의도와 다르게 내 의지, 내 고집으로 갈려고 했었다. 그 뒤로 함께 걸어온 조원들은
지치고 의견충돌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아니지.. 이게 아닌데.. 우리들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손을 잡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상한 갈대 꺾지 않으시는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사랑♪
광주에 해매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알려 주세요.
사방이 막혀 갈 힘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 피켓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히치하이킹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태워 주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걸어서 20분 거리 광주 터미널에 가서 도움을 받기로했습니다.
작은 희망도 놓지 않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터미널 근처에 지나갈 때 우리들이 만든 피케을
보신 어르신들이 궁금해 하셨고 무전전도여행중이라고 우리를 소개했습니다. 고창에서 시작, 장성을 돌고,
광주에 내려와 부산을 향해 걸어가는 여행을 대해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신 분들은
작으나마 돈을 주셨고 그 돈으로 우리는 부산으로 갈수 있는 차비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광주 터미널에서 청소년 어울림 마당에 참여해서 차비를 구하고, 터미널을 돌며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어느덧 저녁이 되어 모두가 갈수 있는 차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때 무일푼이고, 무능력한 나의 모습을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무전전도여행이 아니면 이렇게 할 필요 없는데, 저는 부산에 가야하는 차비를 생각하지만,
이곳을 당장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 이었습니다. 함께 고생하는 조원들의 입장, 그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함께 고생하면서도내 입장, 내 자존심을 찾은 것에 용서하여 주옵소서,
함께 고생해온 조원들의 모습을 볼 때, 함께 기도하고 나눌 때에 우리 모두가 생각이 틀리고
방향이 틀리고 같은 꿈을 꾸지만 행동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얻은 돈은 일반고속버스를 탈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7시 50분 부산출발 우리가 쉴 수 있는 곳은 버스터미널 승차대기실 뿐이었습니다. 갈수 있다. 9시간 있으면 도착한다.
7시간 있으면.. 5시간... 4시간.. 우리는 터미널 대기실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4월 28일 부산 도착.. 내가 얻은 것과 앞으로의 나의 계획
새벽을 지세우고 드디어 7시50분 고속버스를 타고 3시간 만에 부산 노포동에 도착을
했습니다.

무전전도여행 간증문을 쓰면서 시작부터 끝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출애굽을 하는 유대인과 같은 우리들을 비교해보았습니다. 무전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저는 광야에 있는 유대인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이기기고
내 욕심 되로, 의지대로 할 때에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위대하신 나의 하나님
사람들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작은 도움에 감사하고, 늘 겸손히 늘 잠잠히 하나님
인도하심을 따라 가겠나이다. 기도 할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또 다른 누구에게 하나님 사랑을 전하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앞으로의 계획은 사역자반 수료가 끝난 것으로 훈련이 끝난 것이 아님을 압니다.
함께하는 교회 훈련, 십대의 벗 훈련, 내가 인격, 신앙을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
성숙된 성도가 되겠습니다. 주변의 상황을 이해하고, 내가 먼저 손 내밀어 도울 수 있는
주님의 자녀, 제자 되겠습니다.

무사히 무전전도여행을 보내주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아버지께 영광 올려드립니다.
사역자반까지 사랑과 열정으로 지도해주신 황동한 담임목사님, 김혜란 사모님, 안주혁 목사님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의 간증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